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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 뷸땡> vol.2 6월호관리자작성일 21-06-29 00:00






 에디토리얼  

리좀 영화교실의 전모

가중되어온 리좀의 위기


위기를 넘어 ‘기로’다. 개관 이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요사이 폐관을 염두 해야 할 만큼 씨네아트 리좀은 중대 기로에 서있다.
대표가 무보수로 일하는 것은 당연했고 가족의 월급을 쏟아 붓고 집을 담보 잡히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우리를 두고 끝없이 굴러 내려오는 무거운 바윗덩이를 들어 올리는 시지프스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창동예술촌 공간 임대 지원사업에서 리좀은 고작 2년 만에 철퇴를 맞았다. 같은 지역 타 공간이 연장된 것과는 대조적인 결정이었다.
리좀이 수년 동안 사비를 털어서까지 이어온 국제 레지던스 및 교류사업은 창동예술촌 국제화 사업 지원금 책정으로 활성화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해당 예산으로 현 창동아트센터 건물을 매입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국제문화교류의 가능성을 무참히 깨트렸다.
2017년 씨네아트 리좀은 고가의 영사장비인 DCP가 없어 휴관할 처지에 이르렀다. 영화 <옥자>에서 촉발된 이 사건으로 리좀의 열악한 재정상황이 알려지면서, 범시민적 예술독립영화 전용상영관 지키기가 여론화됐다. 지자체는 그때서야 부랴부랴 DCP 임대료를 지원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 여지없이 DCP 임대료 지원을 끊어버렸다.
 

제반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교실 예산


그 와중에 ‘리좀영화교실’이 문을 열었다. 5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유명 영화평론가, 현직 영화학과 교수가 진행하는 한국영화사, 프랑스영화사, 영화비평, 영화이론 강의와 부산국제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울주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영화제 관련 강의, 경남 출신 영화감독들의 영화 제작 강의 등 전국 각지에서 온 13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가 총 25개의 강좌를 1개월 17일간에 걸쳐 진행하는 강행군 일정이다.
강의스케줄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 지역의 작은 영화관에서 진행하는 ‘영화교실’의 프로그램이 맞는지 의심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탄탄하고 밀도 있는 구성 때문이다. 강의를 맡은 교수들이 “대학에서도 이런 강의가 없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모집 당시 빡빡한 일정과 높은 강의 난이도, 평일 낮 시간대 스케줄로 인해 수강생이 적을까 우려했지만, 예상과 달리 정원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해주었다. 현재는 매회 15명 내외의 수강생들이 빠짐없이 출석해 열성적으로 영화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리좀영화교실이 꾸려질 수 있었던 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 덕분이다. 지원금에는 강사료와 홍보물, 보고서 제작비가 포함됐다. 다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의 스케줄을 잡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강의실을 마련하고, 강의에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고 필요한 소모품을 마련하는 등 제반 비용은 불 포함이다. 즉, 이 모든 비용이 리좀의 몫이라는 의미다.
애당초 수익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2015년 리좀 개관의 배경
지자체의 외면과 중앙의 몰상식한 예산 편성은 이 무모한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애당초 공공기관이 아니라면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하는 사업이었을까.
2013년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의해 폐업한 곳은 진주의료원만이 아니었다. 홍 지사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과 경남영상위원회를 경남문화재단과 통폐합함으로써 사실상 경상남도 영상 발전의 싹을 단번에 잘라버렸다.
10년 동안 부재했던 경남 영상문화정책의 공백을 메운 것은 창동영화상영회, 창원시네마테크, 프랑스영화상영회인 ‘목요영화’ 등이었다.
정기적인 상영회만으로는 지역 영상문화를 지키기 어렵다고 절감하던 2015년, 씨네아트 리좀이 문을 열었다. 정부의 정책변화로 버티다 못한 10여 개 영화관이 줄지어 폐관하는 시기였다.
경남의 영상문화를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자존심으로 개관한 씨네아트 리좀은 명분만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경남 전체 32여개 영화관이 170여 개 스크린으로 약 14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그중 23%의 영화가 단 하나의 상영관을 가진 씨네아트 리좀에서 상영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코로나19 이전 통계). 단관 영화관 중에서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리좀이다.



리좀은 왜 계속되어야 하나


하지만 이러한 위상과 무관하게 리좀은 말 그대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다.
가족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사는 집을 담보 잡히면서까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예술독립영화 전용상영관이 왜 굳이 필요한지, 이 일에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지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 봉준호 감독이 별안간에 튀어나온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고 싶다. 그가 찍은 첫 영화가 단편영화이고, 수많은 유명 감독들이 단편영화, 예술독립영화를 찍으며 작가정신을 단련해 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전하고 싶다. 예술독립영화가 작가를 발견하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여전히 소중한 통로가 된다고 믿고 싶다.
한국영화의 세계적 위상이 한순간에 허상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330만 경남 도민과 104만 특례시 창원 시민에게 또 한 번 “지역은 역시 안 돼”라는 패배감을 안겨주기 싫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연대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독립영화 전용상영관은 단지 예술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은 아니다. 리좀과 같은 작은 영화관은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영화제, 기획전으로 살려내고, 씨네클럽, 영화교실 운영 등으로 새로운 관객과 잠재 감독 나아가 세계시민을 길러내는 다목적 문화예술공간이다.
매회 열기를 더해가는 리좀영화교실이 도시와 역사, 문화와 사람을 이어가려는 리좀의 방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진주의료원 폐업은 2014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민간의 빈틈을 메우는 ‘공공’의 중요성을 여실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그 이상 얼마나 더 큰 교훈이 필요할까.


- 하효선 (에스빠스리좀 대표, 씨네아트리좀 프로그래머)


 



 리좀 [현장]  
 

리좀 [현장]
: 리좀에서 일어나는 ‘요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화교실"


 

“대학에서도 이런 강의가 없죠.”
한국영화사, 프랑스영화사, 영화비평, 영화이론, 영화 제작, 영화제 프로그램, 예술영화관의 미래를 커리큘럼으로 하는 ‘리좀영화교실’의 포문을 연 이상훈 프로그래머의 첫 마디였다.
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한 내게도 ‘리좀영화교실’의 커리큘럼은 놀라운 것이었다. 커리큘럼을 보자마자 대표님께 물었던 말이 “이게 가능해요?”였으니까.
백화점 문화센터 식의 교양강의 정도여도 괜찮았을 테지만 좀체 타협을 하지 않는 리좀이 이번에도 기어코 일을 내고 만다.



25개, 75시간, 13명의 전문가가 모인 강좌
주변에서 뭐라 하거나 말거나 총 25개 75시간의 강좌를 진행하는 2021 리좀영화교실이 5월 16일 닻을 올렸다. 영화평론가, 영화학과 교수, 영화감독, 국내 주요 영화제, 예술영화관 대표 등 총 13명의 내로라하는 영화계 전문가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2021년 리좀영화교실은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처음 시도된 시민 대상 무료 영화강좌이다.
듣는 사람에게는 이 보다 좋을 수 없는 강의이지만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최 측이 했을 ‘생고생’이 훤히 들여다보여 기분이 짠하다. 최소 13명 이상(섭외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전화를 걸었을까)의 강사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묻고 강의에 필요한 사항들을 체크하고, 강의주제를 상의 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끝도 없었으리라.
더군다나 강사료와 홍보물, 보고서 제작에 필요한 실비 외에는 지원이 되지 않았다니 리좀은 뭘로 먹고 살아야 하나 내가 더 걱정이다.


 

​영화 전반에 대한 전무후무한 강의


총 18명이 지원해 15명으로 꾸려진 리좀영화교실의 수강생은 주부, 대학생, 기자, 작가, 창업자, 전현직 교사·교수 등 다양한 면면을 가진 이들로 꾸려졌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던 이부터,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커리큘럼이라는 생각에서 신청한 대학생, 영화감독에 도전하고픈 사진작가까지 신청 이유도 제각각이다. 공통된 것은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알찬 프로그램을 수강할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리좀영화교실은 이상훈, 전찬일, 이용철 영화평론가 등 이름이 잘 알려진 유명 영화평론가들에게 직접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 국내 주요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울산세계산악영화제의 현직 프로그래머들에게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 경남 출신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감독들에게 영화제작에 대한 실무와 비화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등 영화사, 영화이론과 비평, 영화제, 영화제작 등 영화 전반을 망라하는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중반을 넘어 끝을 향해가는 영화교실
리좀영화교실 커리큘럼의 70% 이상을 수강한 사람에게 주는 ‘수료증’은 그래서 더욱 남다를 듯 싶다. 대학원 1년 치를 강의를 한 달 반 만에 듣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래 곱씹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이보다 더 좋은 영화수업이 또 있을까.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보통 네 번의 강의로 수강생의 ‘혼을 빼놓은’ 리좀영화교실은 현재 한국영화사, 프랑스영화사, 영화비평, 영화이론 강의를 지나 경남 출신 영화감독들과 국내 3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과의 만남, 국내 대표적 예술영화전용관 모모의 최낙용 대표와의 만남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처럼 혀를 내두르는 빡빡한 강의 일정과 평일 낮 2시 혹은 3시에 시작해 3시간 남짓 진행되는 스케줄에도 수강생들은 거의 빠짐없이 자리를 지킨다. 매회 열기로 가득 찬 강의를 지켜보면서 리좀영화교실이 한 회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깨진 독에 물을 붓기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화교실’을 만들어낸 리좀이 오래도록 시민의 곁에 남아있게 하기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요즘이다.
이상훈 프로그래머는 첫 강의에서 “최근 한국 영화의 위상은 정말 놀라운 것”이라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이 절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한국영화는 지금의 위치에 서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지원해도 실제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너무 작다면 지원을 끊어야할까. 이상훈 프로그래머는 단적으로 500억을 지원해 실제 예술가들에게 단 10억이 가더라도 지원은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리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비영리기관,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당장은 깨진 독에 물붓기라 하더라도 더 훗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최소한의 가치들이 있지 않을까, 묻고 싶어졌다.
이번에도 “남는 게 없는 장사”라며 푸념하지만, 그럼에도 “리좀이 아니면 할 곳이 없으니”라는 대표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손 상 민(작가)
희곡, 뮤지컬, 동화, 에세이...
장르불문 글쓰기로 살아가는 전업 작가다.
나무와 바다 출판사, 쓰는책방도 운영한다.


 



 [특집: 같은 영화 다른 시선] <더 파더> 미장센을 잡아라  

<더 파더> 미장센을 잡아라



 

영화를 선택할 때 주로 남들이 이야기 하는 ‘킬링 타임’용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 스펙터클한 영상미나 구성으로 이루어진 눈이 화려한 것들이 좋다. 심심해서 보는 것이 영화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구태여 감상을 하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거나 수상을 한 영화들은 처음부터 기피하는 영화들에 속한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런 영화를 보고 매우 불편한 감정을 느낀 경험 탓이 크다. 영화에 몰입하면서 나의 감정이 타인(감독),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끌려가며 ‘울고 싶지 않은데’ ‘걱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며 내가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하고 타인의 참견을 싫어하는 예술가적 기질 때문인지 혹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들어내고 싶지 않아하는 개인적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오른 이번 영화 <더 파더> 역시 시작부터 내게는 불편함을 감정들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감상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진 주인공 안소니



주연배우인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가 출연한 영화는 잊지 못한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내게도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은 예전부터 “X쳤구나!”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 몰입감을 선사하는 배우라면 역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시작되고 첫 화면에 안소니가 등장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찾아볼 생각도 없이 바로 감상에 들어갔었지만 분장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 나이가 들어서 인지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에서 안타까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배우가 저리 나이가 들었구나,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안소니의 등장과 함께 오래된 아파트의 실내공간이 비춰지고 할아버지가 된 안소니의 모습에서 대략적인 영화의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바로 ‘알츠하이머.’
몇 해 전에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 역시 미약한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였었다. 안소니의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눈물이 나면 어쩌지?’ 첫 화면부터 걱정스러웠고 중간쯤에선 가슴이 미어져 오는 걸 느꼈다. 영화 평론이나 감상평을 읽어보면 스릴러와 공포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지만 항상 호통을 치시던 나의 할아버지가 가끔 아무 말씀 없이 손자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던 기억과 교차되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아픔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소소한 나만의 목표는 영화감상에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순간엔 한심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영화 속 등장한 32점의 작품들
이번 영화의 배경은 영국으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예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고 개방적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속 배경이 되는 일반 가정집의 모습은 수많은 그림들과 공예품들이 등장한다. 실제 영국을 가보지 않았지만 다른 서구권 국가의 가정집을 방문하였을 때처럼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들과 유사했다.
현실적 반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것 아닐 것이며 분명 특정한 의도가 있을 것 같아 유심히 살펴보기로 하고 얼마나 많은 그림이 걸려있는지 노트에 적으면서 세어보기로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뜻 세어보아도 32점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세는 동안에 문뜩 이처럼 엉뚱하게 그림을 세는 동안 영화의 내용에 더 집중할 껄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결국 다 세어보았다.
그럼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림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안소니의 아파트 실내에는 특정한 취향의 작품들을 걸기 보다는 다양한 사조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표현주의에서 구성주의, 모더니즘 양식 등 감독과 미술감독은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많은 예술품을 화면 속에 담은 것일까?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안소니의 딸인 앤이 잠시 바라보는 그림이 아웃 포커싱에서 인 포커싱으로 전환되는 장면에서 한 가지는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그림의 변화와 사라지는 기억들


그녀가 그림에 집중하는 장면은 일종의 회상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그림 속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등장하는데 ‘앤’이 자신의 모습을 그 속에 투영하여 중년된 자신이 아닌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알츠하이머로 인해 변해가는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듯하다. 그리고 이후에 안소니가 그 그림을 찾는 장면도 나오는데 점점 사라지는 기억에 대한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들은 변화하는 미술사조에 따른 유행의 흔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안소니가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예술에 대한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얼마나 문화를 즐기고 그런 문화를 즐기는 과정에 가족들과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하여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과몰입을 부르는 영화라는 단점
영화를 감상한 후에 느껴지는 감정은 아픔이었다. 다른 이에 대한 상황과 감정을 공감한다는 감동 보다는 영화의 몇몇 장면이 나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지난 경험과 교차되면서 슬픔이 지속되었다. 눈앞에 있는 손자인 나에게 나는 잘 있냐는 안부를 물어봤던 기억과 스스로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것을 인지하시던 할아버지의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들이 떠올라 영화 감상 후에도 한참 동안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아픔을 다시 느끼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사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었지만 이번은 그러지 못했다. 영화에 너무 몰입해 버린 것이다. 내가 킬링타임의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기도 하며 개인적으론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고 싶다.

 

- 박도현 (시각 예술인)
"유행하는 옷은 안 입는다.
그렇다고 앞서나가지도 않는다.
평범히 갈 길을 가는 사람이다."


 

 


 

 [특집: 같은 영화 다른 시선] <더 파더> 영화 속 춤을 찾아서  

<더 파더> 영화 속 춤을 찾아서





춤으로 마음을 치료하다, 탭댄스

영화 속 춤에 대한 이야기를 몸으로 그리고 언어로 표현하는 ‘영화 속 춤을 찾아서’ 두 번째 시간.
이번에 살펴볼 영화는 치매노인과 딸의 이야기를 다룬 <더 파더>이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더 파더>에서는 치매노인인 주인공 안소니가 춤을 추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길어봐야 10초 정도 될까한 이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어서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잊지 않고 떠올릴 만하다.
안소니가 이 장면에서 춘 춤은 탭댄스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전문가다운 리듬으로 춤을 선보여서 간병인이 전직이 뭐였냐고 물었을 때 탭 댄서라고 답하는 것조차 자연스럽다. 딸은 아버지가 언제 탭댄스를 췄냐고 반문하지만 말이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안소니가 딸에게 면박을 주며 마무리되지만, 영화 속 탭댄스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금속 징을 박은 신발을 신고 언제든 탭댄스
탭댄스는 알다시피 특수한 탭 슈즈를 신고 추는 춤이다. 원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추던 춤에서 유래했다. 탭댄스를 추던 당시에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았고 구두 밑장이 금속 징으로 되어 있어서 흥이 날 때면 언제든지 출 수 있었다. 탭댄스하면 떠오르는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탭댄스 장면이 당시로서는 실제로 가능했던 일인 것.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속 징이 박힌 구두를 신고 다녔기 때문이다.
요란하게 소리를 내야하는 춤의 성격 상, 탭댄스를 오래 췄던 사람들이 후에 뇌 관련 질환을 앓게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더 파더>의 주인공이자 치매를 앓고 있는 안소니가 탭댄서였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탭댄스가 나오는 영화들
탭댄스가 나오는 또 다른 영화들도 추천할 만하다.
첫 번째로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다는 영화 <라라랜드>.
해질녘 할리우드 힐스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추던 춤이 바로 탭댄스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무관심한 척 관심이 없는 척 노래를 부르다가 미아가 가방에서 탭슈즈를 꺼내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미아가 탭슈즈를 신은 후부터는 함께 탭댄스를 추며 서로에게 호감을 확인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을 예고하는 장면을 예고하는 것.
함께 발을 맞춰 추는 탭댄스처럼 두 사람이 하나가 되리라는 걸 미리 보여주는 듯 하다.




두 번째 추천 영화는 <싱잉 인더 레인>(1952)이다.
40대 이상이라면 빗속에서 우산을 돌리며 춤을 추는 장면을 본 기억이 어디엔가는 있기 마련인 고전영화다.





세 번째 추천영화는 미하일바리시니코프가 나오는 <백야>(1986)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실존인물을 영화화한 것도 매력적이지만 주인공이 나의 최애 무용수라서 언제 봐도 두근거리는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 속 춤을 따라서 춰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2018년 작 <스윙키즈>.
영화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포로수용소였던 거제포로수용소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전쟁 포로들로 댄스단을 결성하는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그 댄스단의 이름이 ‘스윙키즈’라는 설정이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단원들의 이야기와 춤실력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춤으로 치유하는 ‘댄스테라피’
다시 영화 <더 파더>로 돌아가 보자.
영화는 안소니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소니는 탭댄스를 통해 과거를 언급하지만, 실제 치매를 앓는 노인들에게 춤은 굉장히 유용하다.
이처럼 무용으로 치유를 돕는 것을 일컬어 ‘댄스테라피’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치매노인들을 위한 댄스테라피가 굉장히 활성화 되고 있다.





여기 댄스테라피스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치매를 위한 댄스 테라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치매를 앓는 사람과 춤을 추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왜 그런 일에 마음을 써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자기부모들 돌보는 일에만 너무 안주하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우리의 문화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을 반영하니까요. 우리보다 앞서 길을 닦아준 그분들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중증 치매 환자들이 창고에 쌓아둔 것처럼 물건 취급을 받는 것을 봅니다. 그들과 춤을 추는 것은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비언어적 소통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거죠.
그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몸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내면의 활력을 일깨우고 경험하도록 말이죠.
이제 삶의 마지막 남들을 보내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몸이 살아 있습니다. 치료사는 그들이 현재 숨을 쉬며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들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세요. 그리고 함께 고유 한 춤을 춥시다.
그 순간의 감정과 선택을 표현하는 그러면 모두 함께 움직이고, 그 안에서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1년 미국 마크 모리스 무용단이 만든 ‘댄스 포 피디’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교육프로그램이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신체 능력의 퇴화와 더불어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댄스 포 피디’는 몸을 움직일 뿐 아니라 환자들 간 정서 교감을 통해 마음까지 치유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내세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단체가 있다. 무용을 통해 창의적인 표현과 움직임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치매 예방을 도모한다는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그곳이다.

http://www.dcdcenter.or.kr/load.asp?subPage=832_8&idx2=9


<더 파더>의 탭댄스를 시작으로 영화 속 탭댄스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치매 노인들을 위해 확산되고 있는 무용치료에 대한 내용까지 살펴보았다.
춤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일, 어렵지 않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함께 춤추지 않으시겠습니까?


 

- 박은혜(무용인)
마산에서 활동하는 무용가 박은혜입니다.
영화와 함께~ Shall we dance?



 



 

 [이럴 땐 이런 영화] 웹툰으로 보는 영화 추천 - 인생이 복잡하다 느껴질 때 












인생이 복잡하다 느껴질 때 영화 추천작



- 김예림
1617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여전히 영화를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영화가 많이 생겼습니다.




 




 [2021리좀영화교실 수강생의 영화 비평] 

<2021 리좀영화교실> Ⅲ영화비평 (이용철 영화평론가님) 강의에서 영화 <빛 The Shadow>를 본 후 작성한 수강생 장가영님과 김정란님의 비평글입니다.




줄거리
고등학교 졸업식 날, 같은 반 친구들의 증명사진을 나눠 갖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다.
한때는 제일 친했지만 이젠 서먹해진 사이의 희주,도현,지수. 성인이 된 후, 그들은 그때의 증명사진을 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 <빛 The Shadow>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빛 The Shadow’는 세 등장인물의 고교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15회 인디애니페스트 초록이상을 수상한 이 영화에 혹시 화려한 볼거리나 강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였다면, 평이한 화면구성과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흑백의 영상, 심화 또는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담은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상징을 고려해볼 때, 감독의 이러한 연출은 꽤나 현명하게 느껴진다. 색채 없이 명도만으로 형태와 깊이를 표현하는 흑백 영상에서 파편화된 색채의 등장은 이 영화의 제목과 주인공들의 상태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빨강, 파랑, 초록이 만들어내는 하얀 빛과 빨강, 파랑, 노랑이 만들어내는 어둠(검정)의 관계이다.
희수는 빛처럼 반짝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얼굴은 과장되게 하얗게 바르고 입술은 분홍색(하얀빛을 띤 엷은 빨강)을 칠한다. 하지만 희수를 상징하는 색은 파랑이다. 희수의 얼굴에서 장면 전환해 나오는 첫 배경은 바로 파란 바다-물론 여기서는 흑백으로 표현되었지만-이다. 그녀는 자신을 바다 위에 뜬 환한 달로 인식한다.
반면, 자신의 스탠스를 회색이라 표현하는 도연은 시력 검사 기계에 나타나는 빨강, 파랑, 녹색의 전원풍경 그림을 파괴한다. 그녀는 이 색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하얀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선택한다. 그녀(또는 그)는 붉은빛으로 표현된 도연과 초록빛으로 표현된 도현이 혼합돼 만들어낸 노랑으로 존재한다.
지수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그것들로부터 등 돌린다. 원치 않은 빛은 그녀를 덮치고 그녀는 까맣게 타버린다. 가장 희미하고 존재감 없어 보이는-즉, 색채가 없어 보이는- 그녀이지만 그녀는 말보로 담뱃갑과 타오르는 불꽃이 상징하듯 빨간색을 띤다.
결국 파랑의 희수, 노랑의 도연, 빨강의 지수가 만들어내는 색깔은 무엇인가. 검정이다. 그들이 공존했던 학창시절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화해서 추억하는 하얀 빛이나 원색의 빛깔이 아니다. 함께 하기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이면서 또한 겉도는 개인들이다. 위로받지 못하고 다가설 수 없는, 바로 그 관계의 틈 때문에 그들은 완전한 어둠이 되지는 못했다.
만약 어둠(또는 검정)이 명도가 낮아진 빛(또는 하양)일 뿐이라면 그들의 고교시절은 어둠이자 동시에 빛이다. 그렇기에 양자 사이에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필요치 않다. 그녀들의 조각난 존재와 외로움 역시 그렇다. 그저 그녀들은 거기에 있었고 그렇게 존재하였을 뿐이다. 이 영화는 톤 다운된 영상으로 그저 그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 어떠한 것도 재단하지 않는다.


- <2021 리좀영화교실> 수강생 장 가 영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빛 The Shadow>

명확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삶은 오늘도 빛으로 어둠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끊어질 듯 서먹하게 이어지는 단편영화<빛>은 여성감독 특유의 애니메이션 조각으로 이뤄지며 여성주의 시각이 가득하다.
립틴트, 손거울, 다이어리 같은 특유의 소품에 화려하고 선명한 색을 입힘으로서 여고생들의 일상을 드러내었다. 지금 빛나듯 보여도 그때는 어두윘던 모퉁이를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여고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추억하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지나간 삶을 빛나게 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빛>의 삶을 찾아내기 위한 가장 적당한 방법은 더 많은 어둠을 찾아내는 것 아닌가!
김혜진 감독은 투박한 애니메이션과 노곤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울퉁불퉁 감성과 감정의 부대낌, 정체성, 빛 그리고 어둠들.
금기와 경계를 모르고 첫걸음을 배우는 아이처럼 가만가만 불투명한 길로 나아가는 영화<빛>은 결국이 아닌 마침내의 길로 나아가게 되길 바란다.
청춘은 풋풋하고 아름다우며 눈부시게 생을 추동하고 있다.
때로 아이가 아니면서 아이인척하며 책임과 윤리를 해소하지 못한 채 불안정을 드러내고 실수가 잦은 것도 사실이다.
불의와 부조리에 반항하지만 여러 모순을 품은 채 방탕에 빠질 때 젊음은 그저 혼란이다.
그러니 청춘이 무조건 아름답다거나 빛과 어둠으로 단정짓지 말며 부디 견뎌내며, 나아가는 <빛>이 되어주기를 바래본다. 그때는 맞을 수 있지만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며, 빛과 어둠이 함께 있을 때 의미가 있음이다.


- <2021 리좀영화교실> 수강생 김 정 란



 




 [씨네아트리좀비단의 영화 리뷰] 


'씨네아트리좀비단'이란 씨네아트리좀 영화 리뷰단 입니다.
씨네아트리좀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분께서 제공해주신 소중한 리뷰이며
앞으로 업로드 될 리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애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 <애플>


ㅣ 매력적인 감독과 제작자의 만남
올해 씨네아트리좀에서도 재개봉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2015)>,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블루 자스민(2013)>과 <캐롤(2015)>은 모두 내가 인생작으로 꼽는 몇 안 되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언급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애플(2020)>이다. 이 영화에는 ‘케이트 블란쳇이 선사하는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 그리고 ‘제2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통해 장편 데뷔를 한 감독 크리스토스 니코우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송곳니(2009)>의 조감독 출신이다. 아래 영화 포스터에서도 <애플>은 본 영화의 감독보다 제작자인 케이트 블란쳇과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강조하고 있다. 케이트 블란쳇은 <애플>뿐만 아니라 <캐롤>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영상미와 여운을 주는 스토리를 자랑한다. <캐롤>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애플>은 ‘기억’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ㅣ 기억을 잃은 한 남자
영화는 ‘쿵, 쿵’하는 소리로 시작한다. 주인공 알리스가 벽에 머리를 찧는 소리다. 이후 멍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알리스를 비추며, ‘단기 기억상실증’이 유행하고 있다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간다. 이렇듯 기억 상실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시대에 사는 알리스는 꽃을 사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버스에서 잠이 들고 만다. 잠에서 깬 그는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던 그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위한 병원 시설로 이송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알리스를 찾는 이는 없다. 사과의 새콤달콤한 맛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알리스에게 병원은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해당 프로그램은 의료진이 제공하는 녹음 테이프에 담긴 지시를 환자가 수행하고, 그 과정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기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이 제안한 ‘자전거 타기’ 임무를 수행하는 알리스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알리스는 ‘자전거 타기’부터 ‘코스프레하기’,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기록한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기록을 하는 데 컴퓨터나 휴대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세트테이프, 폴라로이드 카메라, 앨범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영화 화면의 비율도 과거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연상케 하는 4:3의 화면비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관객들이 영화의 시대 배경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려는 감독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편, 영화는 알리스가 안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크게 나뉜다. 알리스는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관람하는 임무 수행을 위해 찾은 영화관에서 자신처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안나를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임무를 함께 수행하며 가까워진다. 예컨대, ‘운전하기’ 미션을 받은 안나는 알리스와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 이내 안나가 모는 차는 나무를 들이 받고, 알리스는 그런 안나의 모습을 폴라로이드로 찍는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함께 수영하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함께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가까워지는 안나와 알리스

​하지만 머지않아 알리스는 안나가 그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들이 실은 병원으로부터 주어진 과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알리스는 안나가 미션 수행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안나를 만나는 것을 피한다. 이후 혼자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리스는 죽음을 앞둔 노인을 만난다. 그는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과연 정말로 ‘기억을 잃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ㅣ 어쩌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래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한 남자
위에서 언급한 장면 외에도, 알리스가 사실은 기억을 잃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다소 등장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살던 곳의 이웃집 개 이름은 물론, 스프나 빵을 만드는 법을 기억한다. ‘징글벨’과 ‘백조의 호수’를 묻는 병원에서의 테스트는 모조리 틀리지만, 안나와 드라이브를 하던 중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Sealed with a Kiss’라는 노래의 가사는 흥얼거린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곧장 자신이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 열쇠도 없이 문을 연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벽에 머리를 찧고 있었던 주인공을 떠올리며 추측해본다. 어쩌면, 아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아내와의 기억과 아내를 상실한 아픔을 잊기 위해 일부러 시설로 들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사과를 사는 알리스. 영화 속에는 알리스가 사과를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은 ‘사과의 맛’이다. 실제 영화에는 알리스가 사과를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병원으로 처음 이송된 날에도,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서도 알리스는 매번 ‘사과’를 베어 문다. 딱 한 차례, 알리스가 사과 대신 오렌지를 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일 가게 주인의 ‘사과가 기억력에 좋다’는 말을 듣고 나서다. 알리스는 집었던 모든 사과를 내려놓고 오렌지를 산다. 마치 그 어떤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이다. 이는 영화 마지막에 덤덤하게 사과를 먹는 주인공의 모습과는 대조된다. 안나와의 관계에 실패하고, 노인의 죽음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알리스는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당당히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노인의 죽음 이후, 알리스는 병원에서 제공한 집을 떠나 원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또, 꽃을 사들고 아내의 무덤에 찾아간다. 이는 영화의 도입부와 수미상관을 이루는데, 아내와의 모든 기억을 잊고 싶었던 그가 ‘기억력 향상에 좋은’ 사과를 베어 무는 장면은 알리스가 아내를 기억하기로 결심했음을 유추해보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알리스가 찾아간 아내의 묘지명에는 ‘안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ㅣ'안나’의 정체와 <애플>의 해석
알리스의 아내였던 안나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안나와 동일 인물일까? 영화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안나와의 기억을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제시한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위해 함께 드라이브를 하던 도중 나무에 들이받은 안나를 알리스가 찍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알리스 혼자 나무를 들이받은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고(그래서 두 안나가 동명이인이라고) 가정하면, 안나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난 이후 주인공이 안나가 수행했던 미션을 자신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안나가 죽은 아내와 동일인물이라고 가정하면 죽은 아내를 추억하며 아내의 죽음을 마주보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직선적 흐름을 취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내의 묘지를 찾아가던 주인공이 기억을 상실해(혹은 상실했다고 거짓 연기를 하며) 병원 시설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제안하던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만난 안나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안나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실망한 주인공은 안나와의 만남을 피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은 아내를 기억해 낸(혹은 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마주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은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사과를 베어 물며, 그는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만난 안나가 만약 죽은 아내라면, 영화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영화 속 묘사된 사건들은 뒤죽박죽 엉켜 버리고, 따라서 이 영화는 한 번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혼자 운전하다 나무를 들이받은 알리스. 이전에 안나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던 장면과 대조된다.

​‘기억’과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만큼, 그리고 주인공의 ‘기억 상실’이 정말인지에 대해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은 터라 영화 <애플>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알리스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잊기 위해 기억 상실을 연기했다고 본다. 또, 그 과정에서 안나를 만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다 실망하고 다시 아내의 죽음을 마주보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베어 물며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이다. 물론, 프로그램에서 만난 안나가 죽은 아내와 동일 인물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한 관객들도 더러 있다. 하여, <애플>은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영화다.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곱씹어 봐야 하는 그런 작품. '당신을 사로잡을 가장 특별한 여운'이라는 영화의 카피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ㅣ 기억과 상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다. 저명한 철학자 니체는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고도 말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도 인용된 유명한 구절이다.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다면, 후회한다고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망각은 결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터널 선샤인> 속 두 주인공은 나를 아프게 하는 상대를 잊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기억을 지웠음에도 결국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애플>에서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기억 상실을 연기했던 주인공도 결국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아내의 상실을 대면하기로 한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의 입을 빌리자면,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게 되는데, 우리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즉,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얻어야 한다. 감독은 “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기억의 산물이라면 슬픈 기억을 어떻게 다루면서 나아갈 수 있는지와 연결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는 슬픔, 아픔, 상실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한다. 때로 ‘잊지 않는 것(기억하는 것)’은 ‘잊는 것(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잊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베어 물며.


- 씨네아트리좀비단 홍은혜


 





 [리좀비 인터뷰] 리좀 영화교실 수강생을 만나다 




↓ 2021리좀영화교실 자세히보기
http://espacerhizome.com/bbs/board.php?bo_table=N020503&wr_id=1


관객 게릴라 인터뷰를 기획한 ‘리좀비(리좀을 주기적으로 찾는 영화애호가를 지칭하는 신조어) 인터뷰’의 6월 주인공은 리좀영화학교 수강생인 제소영 씨입니다.
앞서 두 번의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던 터라, 세 번째 상대에게 접근할 때는 좀 더 지능적인 화법을 동원해야했습니다.
이를테면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겁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좀에서 웹진을 만드는 손상민이라고 합니다...”
상대가 정신을 살짝 놓은 사이, 급소를 찌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씨네아트 리좀이 요즘 굉장히 어려운 것 아시죠? 코로나로 관객도 많이 줄고 이런 영화학교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리좀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시민 분들의 호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연민을 불러일으킨 후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리좀을 알리고 가치를 확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는 거절하려는 표정을 살짝 지어보이죠.
이때 쇄기를 박아야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제.... 발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인터뷰가 성사되었습니다. 아래는 세 번째 시도에서 성사된 제소영 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급한 일정을 잠시 미루고 시간을 내어주신 인터뷰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Q)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A)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제소영이라고 합니다. 집은 마산이고요. 부산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현재는 마산에서 부산까지 통학을 하고 있어요. 그전에는 대학 기숙사에 있었고요.

Q) 영화교실 신청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리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어요. 마침 시네아트 리좀이 저희집 근처라 영화 보러 종종 오고는 했는데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 정도는 와서 영화를 봤어요.
리좀 인스타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영화시간표를 보려고 팔로우를 신청했는데, 이번에 영화교실을 연다고 공지가 나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Q) 주로 어떤 영화를 보러 오시나요? 누구와 함께 오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A) 씨네아트 리좀에서 상영하는 독립, 예술영화에 관심이 많았고요. 일반상영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영화는 보통 혼자 보러 다녀요. 특히 씨네아트 리좀에서 볼 때는 늘 혼자 영화를 봤는데요.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얘기를 꺼내기도 그렇고, 혼자 보는 편이 편하기도 합니다. 일반상영관에 갈 때도 혼자 가서 봅니다. 물론 친구들과 마음이 맞으면 함께 가서 보기도 하고요.

Q) 요즘 20~30대는 영화관보다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들었습니다. 꾸준히 영화관을 찾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또 일반상영관과 비교해 시네아트 리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일단은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딴 짓을 많이 하게 되고요. 중간 중간 영화를 끊는 경우도 많고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씨네아트 리좀 역시 마찬가지고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일반상영관 보다 관객이 아주 적고 공간도 작다보니 저만의 아지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습니다. 보통 저 혼자 보거나 두 명 정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Q) 독립예술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혹시 전공과 관련이 있나요?
A) 전공은 광고홍보학입니다. 부산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영화의 전당을 가보게 됐는데요. 그곳에서 ‘이런 영화도 있구나’하며 만난 영화들이 독립예술영화들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찾아보게 되었어요.

Q) 영화 관련 수업을 들은 건 처음인가요?
A) 처음은 아닙니다. 영화제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부산아시아영화학교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한 영화글쓰기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Q) 영화교실 수업이 7회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의 수업은 어땠나요?
A) 한 번 정도 빠진 것 외에는 모두 출석해 수업을 들었습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참석할 예정입니다.

Q) 씨네아트 리좀이 독립예술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관객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A) 씨네아트 리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씨네아트 리좀을 아지트 삼아 새로운 영화를 많이 보는 관객층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이 : 제소영
인터뷰어 : 손상민



손상민(작가)
희곡, 뮤지컬, 동화, 에세이...
장르불문 글쓰기로 살아가는 전업 작가다.
나무와 바다 출판사, 쓰는책방도 운영한다.



 





 [리좀인 인터뷰] 

※ <리좀인 인터뷰>는 리좀에서 활동하거나 리좀과 관계된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5월부터 9월까지 <리좀인 인터뷰>에서는 2021년 파견예술인지원사업으로 에스빠스 리좀에서 활동하게 된 작가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본 인터뷰와 콘텐츠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되며,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변경하거나 도용할 수 없습니다.


"내 스타일대로 말하고 내 스타일대로 꿈꾼다."

ㅣ Chapter 01. 나는 누구인가?(신상털기)



부산의 한 화려한 네온사인이 즐비한 동네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적엔 매우 활발한 성격으로 주변에서는 시끄럽고 별난 아이지만 매우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은 주변에게 사랑받으며 자라오다가 인생의 첫 번째 굴곡이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시절 갑작스런 체중증가로 인해 왕따를 경험하게 된 거죠. 그렇다고 지금의 성격이 그때의 트라우마로 형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 지났죠. 그리고 청소년기에 이미 극복을 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그냥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부에 들어가게 되었죠.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청소년이 된 거죠. 왕따를 시킬 수 없는 존재가 되었거든요. 많은 청소년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만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하다보니 많이 따라 그리게 되었고 이를 보신 부모님께서 공부도 못하면 하나라도 열심히 해봐라 하시면서 미술학원을 보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적을 돌이켜보면 상위 15%정도였거든요 그리 못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형이 상위 1%라서 공부를 못하는 아들이었던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냥 갔던 학원인데 재능을 발견하였거든요. 그림을 좀 잘 그렸습니다.
 

나의 성격?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은 매우 활발하고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만 사회화가 많이 되어서 그런지 조용한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인생의 굴곡이 많아서 조심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급하기도 하고 느긋하기도 하고 사실 제 성격을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변에선 착하다는 사람도 있고 냉정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사는 성격이라고 하죠.

즐기는 취미?
이전에는 미술이 취미라고 했지만 어느 이것이 직업으로 바뀌다보니 취미라고 할 순 없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끔 하루 한 시간가량 FPS게임을 하기도하고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인터넷서핑을 하기도 합니다. 그냥 그때마다 하는 일이 달라 정해진 취미는 없는 것 같아요. 꾸준히 하는 것이라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체중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들과 함께 하는 운동은 좋아하지 않아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즐겨하는 편입니다.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라서요.


ㅣ Chapter 02. 현재의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일?
미술에 관련된 일은 모두 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전시도하고 미술관련 교육, 기획일도 하고 있지요. 가끔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위원도 하고 심사도 보고 인테리어 컨설팅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미술과 접목할 수 있고 제가 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작가, 예술가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요즘 관심사? 혹은 추천할만한? (개인취향)
요즘은 사상이나 철학에 관심을 두는 편입니다. 왜 사람들이 저리 생각할까? 나와는 왜 다를까? 라는 의문이 많이 들어서요. 잘못 언급하면 위험하니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추천할만한 것이라곤 관심사와는 달리 대중문화를 많이 접하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실 저도 많이 접하진 않습니다만 가끔 새로운 문화현상을 접하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좀 지난 것을 뒤늦게 경험하는 스타일이라 더욱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생각?
연예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들고 열정을 가지지만 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과 그것으로 마지막까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 매우 유사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 한 번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적이 많아 ‘재능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이어왔지만 공부를 할수록 벽은 정말 높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의 재능은 노력 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시작한 계기?
개인적으로 하고자 해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부모님이 시키셔서 시작했다가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후로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영감의 원천?
어떤 대상은 없습니다. 흔히들 무엇인가를 보고 아니면 경험하고 영감을 얻는다고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라는 고찰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대상을 본다면 그것을 어떻게 그릴 것 인가 라는 생각보다 내가 그 대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서 제 작업은 진행됩니다. 제 그림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저는 주로 자연풍경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기적이고 불규칙한 변화를 품은 자연의 풍경들이 매우 아름답지만 매우 불편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가지거나 담지 못하는 것들, 결국 소유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제게는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보여 지는 풍경들을 도식화 단순화 시켜 제가 보고자하는 방식대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자연의 풍경보다는 문화유적지나 유물 등에 더 아름다움을 느끼고 인공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는거죠.

나의 변곡점?
사건 사고가 워낙 많아 무엇을 들어야할지 망설여집니다. 주변의 지인 분들은 제 인생을 드라마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결론은 아니지만 항상 최선의 결과를 꿈꾸고 진행하고 있기에 아직은 변곡점이라 할 만한 것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공무원을 하다가 미술을 한다고 그만두고 나왔던 것이 지금의 변곡점이라고 생각합니다.




ㅣ Chapter 03. 나의 현재와 만족도?
​만족이라는 척도를 만들기 보다는 현재에 최선을 다 하자라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들만 가득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비관적으로 바뀔까 싶어서 최대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끔 냉정하다는 소릴 듣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을 잘 안하려고 하는거죠. 원래 예술가는 감정적인 사람이니까요.

내가 꿈꾸는 순간? 희망 사항?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 그림에 대하여 공부하고 글도 쓰고 작업도 마음껏 하고 싶습니다. 사실 요즘 생업에 바빠 작업을 못하고 있으니 스트레스를 좀 받는 상황이긴 해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하고 싶은 것 보다는 관련된 일들만 하고 사니 정작 미술을 많이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유사한 일들이라 어느 정도는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것이 꿈이고 희망사항입니다. 모두 그런 상황을 꿈꾸지 않을까요?

내 인생의 한 줄?
‘신용과 신뢰’가 좌우명입니다. 타인이 요구하는 신뢰가 아닌 제 신념과 행동에 대한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
20대 때부터 항상 계획을 5년 단위로 잡았습니다. 이룬 적도 있고 좀 더 밀려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목표는 이루었고 지금의 목표는 앞으로 3년가량 남았습니다. 3년 뒤에 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그때 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제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겠죠?


Epilogue. 인터뷰를 마치며,
전시 오픈으로 바쁜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인터뷰를 하며 본인의 작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역시 그는 공무원보다는 예술인의 삶이 더욱 더 잘 어울렸습니다.
예술인으로 돌아온 당신, 응원합니다.
- 신근영



박도현 작가 약력
개인전 SOLO EXHIBITION
2020. 가상 공간(상상갤러리/창원)
2019. 가상 풍경(부산대학교 아트센터/부산)
2019. 가상 풍경(Gallery T/마산)
외 다수

단체전 GROUP EXHIBITION
2021. 미얀마의 봄(스페이스 사랑농원/김해)
라후루미 노동하는 예술가(리안 갤러리/마산)
창원청년아시아미술제(성산아트홀/창원)
Space OGU(Space OGU/일본)
바다, 숲, 도시 : 공존(영도놀이마루/부산)
2020. 조화로운 균형:공존(경상남도 교육청/창원)
보헤미안삼칠(삼진미술관/창원)
Art Combine2020(스페이스 가율/김해)
오늘자 사회면(가고시포갤러리/서울)
경남청년작가초대전(경남갤러리/서울)
창원미술청년작가회 정기전(성산아트홀/창원)
외 다수

아트페어
2018. ART BUSAN(벡스코/부산)
2017. GIAF(경남미술청년작가회/컨벤션센터/창원)
2016. GIAF(경남미술청년작가회/컨벤션센터/창원)
2013. GIAF(신진작가지원부스/컨벤션센터/창원)
2012. KIAF(신진작가지원부스/코엑스/서울)

레지던시 RESIDENCY
2016. 경남예술창작센터 8기 입주작가
2017. 정수예술촌 7기 입주작가
2020. 삼진미술관 입주작가

기타경력
2015. 부산광역시교육청 영재교육원 연구원
2016-2019. 창원대 미술학과 시간강사
2017. 창원미술청년작가회 사무국장
2018. 창원미술청년작가회장, 창원아시아미술제 운영위원장
2019. 창원미술청년작가회장, 창원청년아시아미술제 감독
2020. 경남미술청년작가회장, 한국미술협회 경남지부, 창원지부 청년분과위원장, 창원시문화도시지원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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