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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성과중심 벗어나 예술적 시각 확장할 때관리자작성일 20-01-11 17:12


경남도민일보  2019년 09월 04일 수요일  이서후 기자(who@idomin.com)

지원·성과중심 벗어나 예술적 시각 확장할 때


예술가들 입주 창작활동 공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대표적
경남에 공공·민간 20곳 넘지만
젊은 시각 예술가 보조 사업화
'경험 확장과 교류'의미 찾도록
국제 레지던스 파견도 고민을


혹시나 레지던스 혹은 레지던시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나 창원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레지던스 입주자를 모집한다거나 민간이 운영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더러 기사로 나옵니다.

레지던스(residence)는 원래 거주, 주거, 주택이란 뜻입니다. 아마 인터넷에 레지던스라고 검색하면 주거형 고급 숙박시설들이 나올 겁니다. 이는 정확하게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라고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공간을 말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들 특히 미술이나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레지던스라고 하면 입주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립니다.

영어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in-Residence)'죠. 레지던시(residency)라고도 하는데, 이게 더 명확하겠습니다. 이 단어에는 전속이란 개념이 있거든요.





◇세계 곳곳에 운영 중인 레지던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문가들이 예술가를 후원한 것을 레지던스의 기원으로 삼을 수 있겠네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대표적이죠.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피렌체를 실제로 지배했던 가문입니다. 이 가문이 문화 예술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이 분야에는 아끼지 않고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피렌체란 도시가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레지던스가 운영되고 있는데 메디치 가문처럼 전폭적인 후원은 못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레지던스 문화가 오랜 유럽에서는 특히 민간 예술 레지던스가 활발합니다. 유명한 곳은 전 세계에서 예술가들이 만만치 않은 체류비를 감당하면서까지 찾아온다고 하네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조슈아트리 고원지대 예술가 레지던스(JTHAR)는 내년 4월 7주간 4~6명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거주와 작업 공간을 제공한다고 돼 있네요. 1인당 1000달러 지원금도 줍니다. 프로그램 기간 완성한 작품은 자체 갤러리에서 전시도 하고요, 작가들끼리 워크숍도 진행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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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레지던스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적으로 공공기관과 민간에서 꽤 많은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원의 창동예술촌 같은 예술촌 방식도 넓은 범위에서 레지던스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네요.

우리나라 레지던스는 장르를 크게 문학, 시각, 공연으로 나누는데 대개는 시각 예술이 중심입니다.

경남에는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곳으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경남예술창작센터(산청), 창원문화재단 창작스튜디오 자작이 있습니다. 창작스튜디오란 일반 레지던스처럼 입주를 하지 않고 작업실만 제공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 외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곳이 20곳 가까이 됩니다. 하동 평사리문학관이나 합천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을 빼면 죄다 시각예술 작가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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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리미술관 레지던스 작가들이 함께 만든 전시. /리미술관 


최근에는 창녕 부곡문화예술센터, 사천리미술관, 창원 ACC프로젝트(리좀) 등 민간에서도 활발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경남을 포함해 우리나라 레지던스는 대부분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형태입니다. 지원이 위주이다 보니 민간에서 운영하더라도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유지가 힘듭니다. 외국에는 오히려 돈을 받는 곳도 많거든요.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니 예술가는 지원 기간 내에 성과물을 내야 하는 제약이 있습니다. 때로 예술가들에게 작품 주제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공식 행사 참석을 강요하기도 하죠.
세금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애초 레지던스가 생긴 취지는 단순히 작업실이 없는 예술가에게 안정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실질적인 의미는 '교류와 경험 확장'입니다.

"대부분 레지던스는 프로그램 종료 전에 입주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거나 오픈 스튜디오 개최 지역민이나 타 예술가들과의 공동협력을 조건으로 부과하고 있으나 레지던스의 근본 취지는 주최자에 대한 어떠한 의무도 없이 참여예술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레지던스를 활용하는 무조건적인 배려에 있다." - 논문 <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 개선방안 연구>(한국문학번역원, 2008)

여기서 '레지던스를 활용한다'는 말 속에 교류와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들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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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ACC프로젝트(리좀) 국제 레지던스에 참가한 프랑스와 중남미 중견 작가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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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ACC프로젝트(리좀) 국제 레지던스에 참가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프랑스 크리스틴 카두르 작가. /이서후 기자

 
예컨대 최근 유럽과 중남미 중견 작가들을 초대한 창원 ACC프로젝트 국제 레지던스에서 작가 소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프닝 때 본 프랑스 작가 안나 에벙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교류와 경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산 어시장의 왁자한 풍경에서 무언가 새로움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도로변에 자리 잡은 보잘것없는 행상에서부터 번듯하게 물건을 차려놓고 파는 상인들까지 서로 이곳에서 뒤엉켜 북적대고 생기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들의 상품 가판과 상품을 소개하고 서로 도우며 이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방식에 매료되어 각 사람을 이 공간의 배경 밖에서 찍은 사진 작업을 통해 그들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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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어시장 풍경을 패턴과 이미지로 표현한 프랑스 안나 이벙 작가의 작품. 레지던스를 통한 국제 교류와 경험의 확장으로 좋은 사례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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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어시장 풍경을 패턴과 이미지로 표현한 프랑스 안나 이벙 작가의 작품. 레지던스를 통한 국제 교류와 경험의 확장으로 좋은 사례다. /이서후 기자  

다시 말해 외국 예술가는 새로운 경험을 얻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재발견되는 성과가 있는 것이죠. 결과물이 어떠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작가가 작업을 하고 경남 지역 작가와 교류를 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얻게 되는 경험이 훨씬 소중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레지던스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경남에서도 외국의 유명 레지던스로 지역 작가를 보내는 사업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이미 부산이나 대구에서 국제 레지던스 파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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