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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 Comming] 6월 개봉영화 <백년의 기억> 씨네아트리좀을 비롯 전국 15개 예술영화전용관이 공동으로 선정 · 배급하는 첫 영화!관리자작성일 20-06-08 14:06



6월 11일 대개봉!


다큐멘터리 ㅣ 프랑스 ㅣ 112분  ㅣ 전체관람가  ㅣ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냉전과 분단에서 평화와 통일까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제3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한반도 백 년의 역사.

남북의 영상기록과 전 세계 남북문제 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해 분단사의 흐름은 물론, 세계 속의 한반도가 가진 상징성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념적으로 다른 두 국가의 탄생과 역사를 전달하면서도, 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의 꿈을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



 





2019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공식 초청작

2019 창원 부마민주영화제 공식 초청작

2020 제 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

한반도 백 년의 기록을 열다

 













Prologue
 

“만약 이 영화가 DMZ 위로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이 편집의 마법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

 




Information

제목 백년의 기억

영제 Korea, A Hundred Years of War

감독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출연  이호철, 박원순, 리종혁, 도날드 그레그, 찰스 암스트롱,

안드레이 란코브 등 세계 각국 남북 관련 관계자

장르  다큐멘터리

수입/배급  전국예술영화관협회(씨네아트 리좀 외 14개관)

배급총괄  에무시네마

러닝타임  112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0년 6월 11일





Synopsis

일제침략 이후 한반도 백 년의 기록을 제3의 시선으로 쓰다!

남북의 영상기록과 전 세계 남북문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백 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분단 역사의 흐름은 물론,
세계 속의 한반도가 가진 상징성을 생생하게 써 내려간다.

북한 당국을 설득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을 들인 제작팀의 노력,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북한의 고위 간부 인터뷰와 영상 아카이브가 열리다!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영화에서 어느 특정 정치 성향이나 국가 형태를
옹호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기록물을 수집하고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념적으로 다른 두 국가의 탄생과 역사를 전달한다.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곳에서 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을 꿈꾸기 시작하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유산을 걷어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는 소망과 꿈을 말한다.






Review

★★★★★

 

“유럽인들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을 제대로 교정한 영화”
씨네아트리좀


“냉전과 분단에서 평화와 통일을 향해”
에무시네마

“우리가 손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트나인

“다가올 백년을 향한 첫걸음”
아트하우스 모모

“남과 북 양쪽에서 듣는 분단과 희망의 이야기”
헤이리시네마

 

“끝나지 않은 전쟁들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영화공간주안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내야 할 기억”
인천 미림극장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이음”
필름포럼

“한반도 근현대 백년의 역사!
이 보다 더 강렬하고 디테일 할 순 없다.
아픔에서 시작되어 분노와 희망이 뒤범벅된 내 인생 최고의 작품.
그런데 이게 프랑스 이방인의 작품이라니...”
안동중앙아트시네마

“이방인의 시선으로 균형있게 담아낸 남과 북의 목소리”
대전아트시네마

“백년 역사의 주름을 이해하게 해주는 영화”
KU시네마테크

“낯익은 분단사를 낯설고 이채롭게 재구성한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한반도 백 년의 기록을 제3의 눈으로 보다!
북한 공적 아카이브 및 고위 간부 인터뷰 최초 공개!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무려 20년 동안 한반도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프론티어와의 전쟁>(2003)에서 본격적으로 한반도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고,

이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다큐멘터리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2013)을 만들었다.

<백년의 기억>(2019)은 그 지난한 노력으로 완성한 최고의 작품이다.


그는 오랜 시간 남과 북을 오가며 촬영했다.

특히 북한에서는 당국을 설득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여 외국인 최초로 북한 고위 공직자의 인터뷰 내용과 공적 영상 아카이브를 공개할 수

있게 됐다. 남북 외에도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 주변 국가들로부터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


<백년의 기억>에서는 감독이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 및 인터뷰 영상을 통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한반도 분단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파란 눈의 감독은 어떤 이유로
남북의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197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9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독일의 통일은 독일인 어머니를 둔 감독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1990년 신입 방송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하나가 된 독일의 상황을 꾸준히 보도했고,

공산주의가 저물어가는 동유럽과 구소련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방송기자 신분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의 만남을 취재하기 위해

200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2003년에는 북한에 머무를 수 있는 DPRK 비자를 발급받았다.

감독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입양된 동생이 두 명 있어 한국이 완전히 낯선 국가는 아니었다.

이후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냉전으로 분단된 채 남아있는 유일한 국가인

남한과 북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정치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로서 천착해온 주제가

자연스럽게 한반도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유럽에서 잘 알려진 공중파 방송국 Arte에서

15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베테랑 감독인 그는 한반도 이슈를 다루면서도 본인이 쌓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전문적 감각을 발휘한다.






영화적 연출로 DMZ 위에 평화의 다리를 잇다.


<백년의 기억>은 남과 북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은 마법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양 국가에서 비슷한 직위를 가진 관계자들의 말을 연속적으로 재구성하는 영화적 편집의 힘이다.

남과 북이 같은 언어를 쓴다는 당연한 사실이 거대한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는 순간도 생겨난다.

가장 강력한 순간은 평화와 통일을 향한 공통된 염원의 말에서 발생한다.

마티유 판사드 촬영 감독은 남과 북이 공유하고 있는 언어와 역사, 노래, 음식, 예절 등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두 국가는 분명 다르지만, 두 국가에 모두 머무를 수 있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공통된 문화를 보여주려고 했다. 북한에 갈 수 없는 남한 관객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하나의 한반도’를 더 가까이 인식하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연출적 장치는 태권도다.

남과 북이 공유하는 문화 중 하나인 태권도의 다양한 동작들은 역사적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삼일’은 한국인의 독립 투쟁을 기념하는 동작이다. ‘삼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남과 북이 공유하고 있는 항일 투쟁의 역사에서 광복의 역사로 이어진다.

태권도의 품새가 한반도 역사의 은유가 되는 셈이다.






 

전국예술영화관협회는 왜 지금 <백년의 기억>을 개봉하게 되었나?

지금 세계는 한반도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연일 세계의 표준이 될 만한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백년의 기억>은 한반도의 지정학적ㆍ외교적 위치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냉전 이후 주변 열강들이 대치해온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격동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서술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 속 한반도의 위치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 중요해진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영화관들이 힘을 모아

<백년의 기억>을 개봉하려는 이유도 영화의 시의성에 있다.

전국예술영화관협회는 <백년의 기억>을 수입ㆍ배급하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정대로 6월 11일에 영화를 개봉한다. 전국예술영화관협회 소속 영화관에서

우선 개봉하며 다른 독립영화관들과도 동시개봉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트하우스 모모, 에무시네마, 아트나인, 씨네아트리좀, 헤이리시네마 등에서는

본 영화의 개봉에 맞춰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GV, 토론회를 준비한다.

씨네아트리좀은 작년 제 4회 창원부마민주영화제에서 공식 초청작으로,

필름포럼에서는 제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를 개최하며 공식 초청작으로

<백년의 기억>을 선정했다. 협회에 소속된 다른 영화관들도 관련

프로그램 진행을 검토하고 있다. <백년의 기억> 연계 행사는

주한 프랑스문화원의 후원 및 도움으로 더욱 풍성해질 전망이다.

전국예술영화관협회에는

씨네아트리좀,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KU시네마테크,광주극장,

대전아트시네마,동성아트홀,안동중앙아트시네마,아트나인,

아트하우스모모, 영화공간주안,에무시네마,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인천미림극장, 필름포럼,헤이리시네마

등 총 15개 극장이 소속돼 있다.




Director's Interview

Q. 무엇이 남북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나?

  나는 1971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건 우리 세대에게 큰 사건이었고, 어머니가 독일 분이신 나에게는 더 큰 이슈였다. 1
990년도에 신입 방송기자로 활동을 시작할 때, 독일 통일의 결과에 대해서 많이 보도했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이후의 동유럽 및 구소련에 대해서 보도했고.
2000년까지는 유럽에서 잘 알려진 공중파 방송국 ARTE의 저녁 뉴스 기자로 활동했다.
그 당시 김정일과 김대중의 만남을 보도하게 되었는데, 그해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했다.
동행한 한국인 통역자가 남북 정상의 만남을 생중계로 보면서
북한 사람들이 뿔을 달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어찌나 놀라워하던지 그 모습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1980년대에 학생이던 그녀는 그렇게 남한으로부터 프로파간다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북 이슈가 내가 읽은 간단한 줄거리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북한은 단순히 구소련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기독교주의, 봉건제도, 유교를 비롯한 많은 영향을 북한화한 김일성의 의지가 실현되어 있는 곳이다.
이에 대해서 2003년에 ARTE에서 첫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북한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서 주로 아카이브와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했다.
곧 DPRK 비자를 발급받게 됐고,
2010년에는 ARTE에서 다시 한번 남북 분단의 역사,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와 상호의존성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Q. 본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이미 한반도 관련해서
<프론티어와의 전쟁>(2003),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2013) 두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백년의 기억>(2019)은 피에르 감독의 인생을 바쳐 20년 동안 한반도 이슈에 대해 연구한 최고의 결과물인가?
최근 작품까지의 작업 과정은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는지?

  맞다. <백년의 기억>은 이전 두 작품을 기반으로 완성했다.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은 2010~2013년에 만들었다.
3년이나 걸린 이유는 남북 양 국가를 설득하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자세한 조사에 북한의 참여를 허락받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영화는 유럽과 그 밖의 나라들에 큰 영향을 주었고,
남북한의 시각으로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유럽인들의 공감도 끌어낼 수 있었다.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은 김정일의 죽음으로 끝난다.
2018년에는 김정은, 문재인 그리고 도날드 트럼프의 만남으로 새롭게 발전한 내용을 모두 담고 싶었다.
20년 동안 남북 정치를 연구해오면서 너무 낙천적인 예상은 믿지 않게 되었다.
너무 비관적인 예상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본 영화에서 다룬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관계의 놀라운 희망을 보여준다.
<백년의 기억>은 이전 두 작품의 최신 버전이다. 30% 이상 새로운 소재들이 추가됐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한반도 이슈는 훨씬 이전의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해하고 현재로부터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이 <백년의 기억>에 힘을 불어넣는 요소이다.

  남과 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에 가장 관심이 간 것은 북한이 미지의 세계라는 점이었다. ‘
갈 수 없는 나라’라는 신화 같은 것 말이다.
그동안 북한은 8번, 남한은 15번 정도 방문했지만,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갈 수 있는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두 번째로 관심이 간 것은 프로파간다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한반도라는 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파간다 구조 중 하나인 북한만이 연구 대상은 아니다.
제3자인 우리가 자라온 나라의 프로파간다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도록 잘 감춰져 있다.
한반도 분쟁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분석하는 작업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Q. 본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북한 당국을 설득하는데 3년이 걸렸는데 그 과정은 어땠는지?

  북한을 촬영하는 일은 정말 조심스럽다.
기자들이나 영화제작자들은 대부분 북한에 도착하면 프로파간다만 보여줄 것이라고 걱정한다. 일
부는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본인의 행동이나 말이 영화에서 나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제대로 전달되거나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을지 몰라도 2000년 당시에는 정말 심했다. 그래서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했다.
나는 모든 작업 결과를 한 번 더 체크하겠다고 먼저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진심으로 듣고 그들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대화가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에는 잘 풀려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영화를 본 북한 관계자는 영화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입장이 진솔하게 드러났다고 느끼고 있다.

Q. 인터뷰 대상은 어떻게 선정하게 되었는가?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방식이나 규칙이 존재 했는지?

  우리는 항상 인터뷰에 최고로 적합한 사람들로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가능한지 물어보았다(웃음).
둘째로, 가능하다면 역사적으로 그 순간에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단순히 해설자나 학자들같이 제2의 분석자가 아닌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인터뷰 대상이 과거의 산증인으로서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집중하게 하는 인터뷰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확실한확실한 사실을 찾으려고 했다.
예를 들면, “북한이 서울을 정복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지?” 또는 “핵의 위협에 대해서 언제 처음으로 들었는지?” 또는
“부시 전 미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 또는 “1994~2000년의 기근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또한 우리는 항상 대칭되게 인터뷰를 하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서울 시장을 인터뷰한다고 하면 평양 시장도 인터뷰하려고 했다.
이 과정은 꽤 잘 진행됐다. (PS: 남북 모두 더 서로 직접적으로 대칭되는 대상이 없는 점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Q. 가족 중에 한국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관계인지?

  사실 한국과는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 부모님께서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하셨다.
한 명은 1977년에, 다른 한 명은 1981년에 입양됐다.
그들은 우리 가족과 함께 자랐고 실제로 내 여동생과 남동생이다.
동양인처럼 보이지만 프랑스 이름을 가지고 있고 한국말은 하지 못한다. 그들은 유럽인이다.
개인적인 배경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낯설지 않았지만, 관련해서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한국에 대한 상투적인 단어들만 알았다.
삼성, 강남, 김치 이런 것들이다. 한반도에 대한 작업은 나의 개인적인 배경보다는 기자 활동과 최근의 경험들에 더 많이 연관되어 있다.

Q. 영화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가 있을 정도로 귀한 기록물이 많다. 북한에 관련된 자료는 어떻게 구했는지?

  조선영화사에 있는 북한 동료들과 신뢰가 쌓이면서 흥미로운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전쟁에 관련된 상당한 자료들을 제공했다.
그 외에 1950년대 이전의 북한 사진자료는 러시아로부터 수집했고, 1980년 캄보디아 왕의 평양망명과 관련된 자료는 오래된 프랑스 보도방송에서 찾았다.
1951년 서울 수복 과정에서 당시 미군이 찾은 북한의 자료를 미국에서 얻을 수 있었다.
1960년 박정희 정권 당시 남한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집단체조 사진이 오늘날 북한의 집단체조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은 남과 북의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다.
마티유 판사드 촬영 감독은 본 영화에서 겉으로 드러난 이념적 대립,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벽을 넘어 실제 사회를 보려고 했다.
물론 남한과 북한은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언어와 역사, 노래, 음식, 예절 등을 공유하고 있다.
양 국가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Q. 남한 인터뷰 대상은 어떤 방식으로 선정했는가? 박원순과 김문수는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남한의 민주주의는 정말 활기차다.
남한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정치적 입장이 상반되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햇볕 정책을 지지하는 인터뷰만 하고 싶지 않았다.
<백년의 기억>에서는 남한 내부에서도 남북문제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명박과 박근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

Q. 관객들이 영화로부터 느꼈으면 하는 점?

  나는 외국인이다.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와 역사를 세세히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
남과 북을 모두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백년의 기억>을 보는 모든 관객이 한반도 분단의 비극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특히 북한에 갈 수 없는 남한 국민들에게 말이다. 만약 이 영화가 DMZ 위로 작은 다리를 놓을 수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비록 편집의 마법이라 할지라도, 영화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영광스럽게 느끼고 행복하다. 항상 희망했던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의 관람은 힘든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사실 기반의 접근을 통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자료들로 구성돼있다.
제3자인 외국인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한국인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Q.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

  2011~2013년에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두 나라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것은 정말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 역
사와 역사의 기록도 전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뉴스 사이트나 탈북자의 증언, 고위 간부 간의 논의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용이해졌다. 당시에는 정보의 낮은 신뢰성이 큰 어려움이었다.

더 어려웠던 점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2년 6개월 동안의 치열한 협의 끝에 마지막으로 북한이 우리를 평양으로 초대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영하 25도로 정말 추웠다. 우리는 고위 간부를 인터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 관계자는 아직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왜 북한 관점의 영화와 남한 관점의 영화로 두 편을 만들지 않는지”, “
영화에는 5분만 사용한다면서 왜 한 시간 이상의 긴 인터뷰를 요청하는지”를 물었다. 대본의 정확한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영화를 한 편으로 만들어야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는 데 3개월이 더 걸렸다.
내 흰머리도 더 늘었다. 다른 국가들처럼 북한에도 여러 입장이 있었다.
누가 비둘기고 누가 매인지, 누가 개방적이고 누가 배타적인지 잘 봐야 했다.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정말 면밀한 관찰을 요구했다.

Q. 영화제작 과정 중 이야기하고 싶은 에피소드?

  정말 많다. 촬영 초기에는 한반도 태권도 역사에 대해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태권도는 남북 전통 스포츠다. 태권도 무술은 남북에 공존하는 동시에 둘로 나뉘어 있다.
<백년의 기억>에는 기술 동작만 사용했다. 태권도의 기술 동작은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금강’, ‘단군’, ‘고려’ 같은 기술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과 북이 공유하는 문화와 역사를 증언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주체’라는 기술이 남한에서는 아직도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작은 남한 밖에서 한국인이 아닌 무술 전문가와 촬영했다.


 












 

Director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Pierre-Olivier Francois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197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파리ㆍ베를린ㆍ보르도 등에서 정치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장면은 독일인 어머니를 둔 그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방송기자로 활동하면서 독일의 통일에 대해 꾸준히 보도했고, 공산주의 이후의 동유럽과 구소련을 연구했다.
10년 동안 프랑스 방송국아르떼(Arte TV)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으며
2000년부터는 다양한 국제 채널의 작가 및 다큐멘터리 제작자 및 감독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사이버 전쟁,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UN 평화유지군, 피아니스트의 삶 등
한반도 이슈 외에도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다룬 15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베테랑 감독이다.
2019년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백년의 기억>(2019)),
제11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평양 유랑>(2019)) 등에 초청되어 한국의 관객들을 만났다.




DOCUMENTARY FILMOGRAPHY

평양을 즐겨요2019, 라사나 바실리, 영웅2019,
공연의 비밀, 클라라 하스킬2017,
UN, 지옥의 마지막 역2015, 세번째 수영2015,
WE LISTEN TO US2015, 한국은 통일할 수 없을까?2013,
알츠하이머, 시간과의 경쟁2011,
SODA: THE MAGIC FORMULA!2010,
러시아인의 꿈의 도시2009, ONCE UPON A FRENCH FRY2007,
프론티어와의 전쟁2003, PIZZA NOSTRA2003





 

프로듀서

크리스틴 캄데수스

Christine Camdessus

변호사 출신인 크리스틴은 영화 프로덕션 회계담당으로 일을 시작했다.
2001년에 본인의 제작사, Alegria Production을 세웠다.
크리스틴은 6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전 세계에 배급했다.
그중 <5 Broken Cameras>(2011)은 2013년 국제 에미상, 2012년 썬댄스 영화제에서
국제 영화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One day in Tehran>(2018)은 2019년 칸 영화제 클라식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프랑스 최고의 제작사상을 받기도 했다. 2014~2018년에는 프랑스 대표
방송 제작자 조합인 USPA의 부대표로 활동했으며, 2018년 7월 프랑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FIPADOC의 매니저&예술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촬영감독

마티유 판사드

Mathieu Pansard

마티유는 피에르 감독과 20년 넘게 작업해왔다. 가장 최근 제작된 영화
<평양을 즐겨요>(2019)를 비롯해서 피에르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를 촬영했다.
15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와 보도영상을 작업했으며
주로 유럽 방송사인 ARTE와 Discovery 채널에서 일했다.
광고나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앞으로의 작업도 피에르 감독과 함께 할 예정이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압도적인 영상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피에르 감독의 작품에 꼭 필요한 촬영감독이다.



편집


클로드 클로렌넥

Claude Clorennec

클로드는 수많은 다큐멘터리, 논문, 소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촬영기사,
편집자, 연출자이다. 피에르 감독과 Arte에서 1990년도 초반부터 함께 일해 왔다.
본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는 다양한 기록물들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가장 이해하기 쉽게 편집했다. 그러면서 감정적인 부분도 살려냈다.
피에르 감독이 촬영 중에 미처 보지 못했던 프레임을 찾아내기도 했다.



음악


질 시빌레토

Gilles Sivilotto

질은 파리에서 컴퓨터 음악 교수로 활동 중이다.
콘서트, 연극, 무용, 방송 및 비디오 게임의 음악을 디자인한다.










 

전국예술영화관협회

2017년에 설립된 전국예술영화관협회는 현재 전국 15개 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한 예술영화관 관련 제도에 실제 운영주체의 의견을 반영하고,
한국독립예술영화 생태계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됐다.

한반도 역사를 제3의 시선으로 충실히 기록한 <백년의 기억>은 평화의 꿈이
성큼 다가온 현시대에 상영돼야 하는 중요한 영화이다.

본 영화의 개봉을 통해 전국예술영화관협회의 단합성과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고,
영화계에 좋은 사례를 남기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전국예술영화관협회는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꼭 상영되어야 하는, 의미 있는 영화를 찾고
뜻을 모아 함께 상영하고자 한다.



Epilogue

“앞으로 통일이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해요.
내 손자들이, 증손자들이 통일 한국에서 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희호 김대중 대통령 부인
영화 <백년의 기억> 中

“나는 정전과 함께 일생을 산 셈이 되죠.
우리는 영구한 평화를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에 통일이 이루어져야죠.”

리종혁 북한 통일연구소장
영화 <백년의 기억> 中